안성농민회에서 시작된 용인 반도체산업단지 대응 활동에 안성시이통장협의회가 합류하면서 반도체 폐수와 초고압 송전선로, 온실가스와 세수 불균형 문제 등이 안성의 핵심 현안으로 부상했다.
1인 시위로 시작된 투쟁은 업무협약과 공동 기자회견, 한천 수중시위, 트랙터 집회와 대규모 도심 시위를 거쳐 경기도청 앞 기자회견으로 이어졌다. 두 단체가 현장 투쟁과 정책 요구를 병행하며 용인 반도체산업단지가 안성에 미칠 영향을 지역사회 공론장으로 끌어냈다는 평가다.
안성시이통장협의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안성농민회는 지난 20일 경기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반도체산업 상생·환경정책에 지지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반도체산업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혜택과 환경·재정 부담을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며 공정수 재이용 확대와 폐수 방류량 감축,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법인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정효양 안성시이통장협의회장과 이관호 안성농민회장을 비롯해 윤필섭 전농 경기도연맹 부의장, 노한영 안성시이통장협의회 사무국장, 임병하 당왕7통장, 윤종우 안성농민회 부회장, 이돈일 사무국장, 심현두 정책실장, 정택훈 금광면지회장, 정공명 서운면지회 총무, 강상욱 안성농민회 총무 등이 참석했다.
노한영 사무국장은 “안성시민과 농민을 대표해 반도체 방류수와 관련한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정책과 환경 보호 행정에 지지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했다.
정효양 회장 “산업 성장, 인접 지역 희생 바탕으로 해선 안 돼”
정효양 회장은 기자회견문에서 “안성시이통장협의회와 안성농민회는 경기도지사의 반도체산업 상생정책과 인접 지자체와의 상생정책에 대한 지지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우리는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미래산업이며 경기도의 성장과 국가 경쟁력,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산업의 성장이 특정 지역 주민이나 인접 지자체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의 혜택은 함께 나누고 환경과 생활권의 부담은 최소화하는 것이 진정한 산업 발전”이라며 “추미애 지사가 지난 7월 16일 반도체 기업의 공정수 재이용 확대와 폐수 방류량 점검을 지시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정책적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성시민은 이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며 “이 정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리와 주민 보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환경대책과 함께 ‘동반성장’을 강조했다.
그는 “용인 반도체산업단지가 성장한다고 해서 용인만 성장해서는 안 된다”며 “인접한 안성을 비롯한 이웃 지자체도 산업 발전의 성과를 함께 누리고 지역경제와 재정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세원이 해당 지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산업의 영향과 부담을 함께 감당하는 주변 지자체와 합리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이웃 지자체 공동세원화를 적극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회장은 “이는 특정 지역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반도체라는 국가 미래산업의 성과를 경기도 전체가 함께 누리고 산업 영향권에 있는 지자체들이 공정한 상생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반도체산업의 성공이 용인만의 성공이 아니라 안성을 비롯한 이웃 지자체 모두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상생·환경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용인에서는 처인구 원삼면 일원에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남사읍 일원에 삼성전자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안성에서는 이들 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 공급시설과 공장 가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온실가스 등으로 인접 지역이 환경·생활권 피해를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 공장폐수 처리수의 고삼저수지 방류계획과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온실가스 배출 등이 핵심 쟁점이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용인은 대규모 투자와 고용, 법인지방소득세 등의 경제적 혜택을 얻는 반면 안성은 전력 공급시설과 폐수 방류 등에 따른 환경·재산권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문제다. 기업과 중앙·지방정부가 안성이 감당해야 할 피해에 대해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 두 단체의 지적이다.
본지는 그동안 용인 반도체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고삼저수지 방류 문제와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환경영향평가, 법인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 논의 등을 안성의 주요 현안으로 지속해서 보도해 왔다.
농민회 청와대 앞 1인 시위에서 경기도청 기자회견까지
이 문제를 지역사회 공론장으로 다시 끌어낸 것은 안성농민회다.
안성농민회는 지난 1월 5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 SK하이닉스 공장폐수 처리수의 고삼저수지 방류계획 철회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용인 반도체산업단지가 안성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우려는 앞서 지역사회에서 크게 확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론화의 열기가 다소 잦아든 상태였다. 농민회는 반도체 폐수와 송전선로 그리고 온실가스 문제 등이 일부 지역이나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안성의 환경권과 재산권, 지역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라며 대응의 폭을 다시 넓혔다.
안성시이통장협의회는 지난 3월 31일 안성농민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대응에 합류했다. 농민회가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에 나선 데 이어 지역 곳곳을 대표하는 이·통장들이 참여하면서 투쟁의 대표성과 조직력이 커졌다.
업무협약 이후 이통장협의회 관계자들도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동참했다. 두 단체는 반도체 방류수와 송전선로 문제를 안성시민 전체의 환경권·생활권·재산권과 직결된 사안으로 규정하고 공동 행동에 나섰다.
지난 4월 28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용인 반도체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안성지역 피해 대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개별 단체의 문제 제기가 안성지역을 대표하는 공동 요구로 확대된 계기였다.
지난 6월 11일에는 SK하이닉스 시험방류수에 반대하며 한천에서 수중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방류수가 고삼저수지와 한천 수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직접 물속에 들어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 지난 6월 23일에는 트랙터를 앞세워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 현장을 찾아가 항의 집회를 열었다. 안성에 환경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의 산업단지 조성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업의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지난 8월 3일에는 농민과 시민 등 500여 명이 트랙터를 앞세우고 폭염 속에서 안성 도심을 행진했다. 농민 중심으로 시작된 대응이 이·통장과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사회 공동 투쟁으로 확산했음을 보여준 집회였다.
그리고 지난 20일 두 단체는 경기도청 앞에 섰다. 농민회의 청와대 앞 1인 시위에서 시작해 이통장협의회의 합류, 합동 기자회견과 수중시위, 트랙터 집회, 도심 대규모 시위를 거쳐 경기도 정책에 대한 지지와 제도 개선 요구로 투쟁의 무대를 넓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성농민회와 안성시이통장협의회는 현장 행동에 그치지 않고 정부와 경기도, 안성시,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지속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두 단체의 활동은 반도체 폐수와 송전선로 문제를 안성의 핵심 쟁점으로 끌어올리는 동력이 됐다.
이관호 회장 “기업이 지역의 희생 당연하게 여겨선 안 돼”
이관호 안성농민회장은 이날 현장 발언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해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 회장은 “세상이 변했다. 관이 대기업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나 SK 같은 대기업이 지역과 함께 상생하도록 해야 한다”며 “두 기업이 경기도의 각종 혜택을 받으며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환경 문제와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데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물과 전기다. 삼성과 SK는 물과 전기를 공급받아 큰 수익을 올렸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지자체와 충분히 상생하지 못했다”며 “기업이 모든 성과를 오직 자신들의 사업 능력만으로 이룬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안성은 전력 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환경 훼손과 여러 문제, SK하이닉스 방류수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며 “지역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천민자본주의식 기업의 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성시이통장협의회와 안성농민회는 SK하이닉스 방류수의 고삼저수지 직접 방류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추미애 지사 공약·행정지도에 힘 싣기
추미애 지사는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19일 김보라 안성시장 후보를 비롯한 경기 남부지역 더불어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들과 ‘K-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공약을 발표했다.
당시 추 지사는 “송전선이 지나가는 마을과 취수장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에게도 반도체산업 성장의 성과가 정당하게 돌아가야 한다”며 “주민들이 단순한 희생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함께 만드는 동반자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첫날에는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K-반도체 혁신 대책’을 1호로 결재했다. 반도체 생산시설의 조기 완공과 산업 기반시설 확충에는 막대한 공공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법인지방소득세를 공동세원화해 광역자치단체와 인접 지자체가 성과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추 지사는 지난 7월 16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용인 반도체 공정수 재이용 비율을 당초 계획보다 높이도록 행정권고했다. 대만 TSMC 사례처럼 공정수 재사용 횟수를 늘려 물 사용량과 폐수 방류량을 줄이라는 행정지도다. 본지는 당시 행정지도의 내용과 안성에 미칠 영향을 보도한 바 있다.
이어 지난 8월 10일에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SK하이닉스 공장폐수 처리수의 고삼저수지 방류 문제를 직접 특정했다. 추 지사는 환경영향평가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정부에 요구할 것을 관계 부서에 지시했다.
김보라 안성시장도 지난 6월 9일 반도체 공장으로 인한 환경·재산권 피해는 인접 지자체가 함께 부담하면서 법인지방소득세는 공장 소재 기초지자체가 모두 가져가는 현행 구조는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시장은 법인지방소득세를 공동세로 전환해 산업의 혜택과 부담을 함께 나누자고 제안했다.
안성농민회와 안성시이통장협의회의 이번 경기도청 앞 기자회견은 추 지사의 후보 시절 공약과 취임 이후 행정지도가 두 단체와 안성시민이 지속해서 제기해 온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이에 힘을 싣기 위해 마련됐다.
농민회의 1인 시위에서 시작해 이통장협의회의 합류와 공동 투쟁으로 확대된 지역의 요구가 경기도의 행정권고와 환경영향평가 강화 지시, 공동세원화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자회견의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두 단체는 경기도의 조치가 선언이나 일회성 행정지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공정수 재이용 확대와 폐수 감축,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고삼저수지 직접 방류계획 재검토와 인접 지자체 공동세원화가 실제 정책과 제도개선으로 이어지는지 계속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두 단체는 “반도체산업의 성공이 용인만의 성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안성을 비롯해 산업의 영향과 부담을 함께 감당하는 인접 지자체도 성장의 성과를 공정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형규 기자 mirhwang7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