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호 전 계성여자고등학교 교사
#1. 나흘간 아내와 둘이 참깨 500평을 낫으로 베어 묶고, 하우스로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
갈무리를 끝내고 식당 주차장 야외 탁자에 앉아, 열무김치에 막걸리를 마시며 땀을 식힌다.
식당 앞에 우뚝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루를 돌아본다.
자유가 속박되었던 군 생활을 제외하면, 나는 늘 내가 머무는 곳에서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갔다. 퇴직 후 고향 안성에서 짓는 농사도 그렇다.
혼자도 술을 즐기는데, 땀 흘린 뒤에 마시는 막걸리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달게 술을 넘기면서도, 오늘도 아내와 함께 일하면서 아내의 눈높이에 다 맞추지 못한 내 언행을 가만히 반성하게 된다.
아내의 말이 순하게 들리는 날이 오기는 올까.
#2. 첫사랑을 소환한다.
상길(78)이 형 그리고 후배 현주와 막걸리를 마시다 첫사랑 이야기가 나왔다.
“상길이 형, **리 사셨던 **아저씨 알지?”
“잘 알지”
“아저씨 큰딸 미선이랑 고2 때부터 군대 갈 때까지 연애를 했거든. 그러니 양가 부모가 다 알고 있었지. 대학생 때 방학에 집에 오면 미선이도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와 밥도 먹고 (…)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며칠 앞두고, 우리 집에서 미선이랑 저녁을 먹고 명호형 오토바이에 미선이를 태우고 미선네 집에 갔는데. 마당에 계셨던 아버지가, “송군, 들어가 술 한잔 하세”라고 하셔서 집으로 들어가 대청마루에 앉아 담근 술을 마시는데, ”송군 군대 간다고 들었는데. 제대를 해도 대학생 아닌가“ “엄마가 저 제대하면 결혼시켜 흑석동 학교 앞에 방 얻어 준다고 하셨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자네만 믿네.”라고 하시더라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경기도 파주)에 배치되면 가족이나 친구가 면회를 오잖아. 엄마가 통닭을 싸가지고 면회를 오신거야.
“그 당시는 통닭이 최고지”
“부대 정문에 있던 PX(매점)에서 엄마랑 얘기를 하고 있는데, 미선도 면회를 온 거야.
엄마는 미선이랑 시간을 보내라고 돈만 주고 가셨고. 애인이 면회 오면 하룻밤 외박을 할 수 있잖아. 부대 앞에 나가 술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미선이 표정이 예전 같지 않더라구. 그러더니 미선이가, “나 더 이상 면회 안 와. 다른 남자 생겼어.”라고 하더라구. 피끓는 나이에 미선이 생각만하고 지냈는데”
휴가를 와서 사진이라도 보고 싶어 앨범을 꺼내 펼쳤는데,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을 미선이가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내 나이 45세 때(계성여고 교사 시절) 명동에서 첫사랑(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
각각 서로의 인연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미선이는 아직도 이쁘네”
“(눈시울을 붉히며)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영호 너는 군대에 가 있었고. 고생하는 너한테 면회가서 작별을 통보한 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야”
“(깔깔 웃으며) 내가 너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너의 현명한 결정이었어. 그런데 네가 날 (군 복무기간) 기다렸다면 분명 나는 너랑 결혼했을 거야. 그 젊은 나이에 군대 간 놈을 3년 가까이 왜 기다려. 제대하고 복학하니까 (영어교육)과 후배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날 따르는 후배들도 있었어. 교대 여학생하고 미팅을 통해 만나 애틋한 정도 나눴고 (…) 군대 가기 전까지는 네가 있어 미팅도 안 했잖아”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다”
“우리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거야”
#3. 형과 아우
“(한동네에 사는 형이 전화로) 지금 시간 돼? 낼부터 배를 따야 해서, 할아버지 산소 벌초하러 가려고. 바쁘면 나 혼자 할게”
“할 일은 있지만 같이 가야지유”
“내가 채비 다 준비했어. 지금 집 앞으로 나와”
선산이 없어 할아버지 산소가 마을 공동묘지 끝자락에 있어 숲이 무성해 잔디도 안 자라 산소 모습이 초라하다.
“(잠시 쉬면서 내가 형에게) 할아버지 산소를 파묘 하면 어떨까?”
“우리가 보고 자란 할아버진데. 우리 세대에는 관리하자고. 우리 죽고 나면 애들 몫이니까.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송영호 전 계성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