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방문한 지난 9월 28일 양성면 노곡리 현장 브리핑 현황판. 이 현황판에는 현재 안성을 뒤덥고 있는 송전탄과 그 송전탑으로 연결되는 송전선로로 안성이 수도권과 인근 지역 대기업 전력 공급 정류장으로 전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자료사진)
안성시를 비롯한 전국 13개 시·군이 송전탑과 송전선로, 변전소가 집중된 지역의 지속적인 피해와 행정·재정 부담을 보통교부세 산정에 다시 반영해 달라는 제도개선안을 정부에 공동 제출했다.
이번 공동 대응은 송전시설 피해를 호소하는 선언이나 원론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 2020년 폐지된 보통교부세 ‘송·변전시설 수요’ 측정항목을 다시 도입하고,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면적을 지방정부의 재정수요에 반영하도록 구체적인 산정 방식까지 제시했다.
안성에는 이미 송전탑 351기가 설치돼 있다. 2019년 정부가 보통교부세 산정에 반영한 안성지역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면적만 105.195㎢에 달했다. 여기에 용인 남사·원삼과 평택 고덕 반도체산업단지,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망 5개 노선이 추가로 추진되면서 지역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가 송·변전시설로 발생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수요를 보통교부세에 반영한 것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에 불과했다. 송전탑과 송전선로는 그대로 남아 있고 주민의 재산권과 지역개발 제약도 계속됐지만, 이를 일부나마 국가 재정에 반영하던 제도만 2020년부터 사라졌다.
교부세는 정부의 시혜 아닌 국가·지방 간 재정 조정제도
보통교부세는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베푸는 시혜성 지원금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른 재정 여건과 행정수요를 조정해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기본적인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내국세 일부를 지방에 배분하는 지방재정 조정제도다.
국가가 전력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특정 지역에 송전시설을 집중시키고 안전·환경관리와 주민 민원, 지역개발 제약 등 추가적인 행정수요를 발생시켰다면, 이에 필요한 비용을 해당 지방정부의 재정수요로 인정해 보통교부세에 반영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안성시는 지난 4일 경기도와 행정안전부에 ‘송·변전시설 수요 측정항목 재도입’을 요구하는 공동건의서를 제출했다.
공동 건의에는 경기도 안성시·양주시·여주시·양평군, 인천 강화군, 강원 태백시·영월군·정선군, 충남 예산군, 전북 장수군·임실군, 경북 포항시·예천군 등 13개 시·군이 참여했다.
이들 지방자치단체는 보통교부세 산정에 ‘송·변전시설 수요’ 항목을 다시 도입하고,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면적에 유사 지방자치단체의 단위면적당 지역관리비와 일정 반영률을 적용하는 제도개선안을 제출했다.
송전시설 문제를 개별 주민의 민원이나 일회성 지원사업에 머물게 하지 않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재정 분담과 배분 문제로 공식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가 전력망의 편익은 전국과 수도권 산업이 누리면서 관리비용과 지역 손실은 시설이 들어선 지방정부가 떠안는 불공정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대응인 셈이다.
부담 인정해 놓고 3년 만에 일몰…종료 근거도 불분명
정부는 송·변전시설이 설치된 지역에서 토지 이용과 개발 제한, 주민 민원, 안전·환경관리 등 일반 지역과 다른 행정수요가 발생한다고 보고 2017년부터 이를 보통교부세 산정에 반영했다.
당시 산식은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면적에 비슷한 규모 지방자치단체의 단위면적당 지역관리비와 반영률을 곱하는 방식이었다. 반영률은 2017년 5%, 2018년과 2019년에는 10%였다.
그러나 관련 시행규칙에는 도입 당시부터 ‘2019년 산정분까지만 기준재정수요액에 반영한다’는 일몰조항이 붙었다. 이후 연장되지 않으면서 2020년 산정부터 송·변전시설 항목이 제외됐다.
정부가 왜 적용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는지, 어떤 조사와 평가를 거쳐 연장하지 않았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된 법령 개정자료에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철거된 것도 아니고 지역의 행정수요가 줄었다는 근거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가가 분담하던 재정적 책임만 거둬들인 것은 국가 전력망의 비용을 해당 지방정부와 주민에게 다시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몰된 것은 송전시설로 인한 피해와 부담이 아니라 이를 국가 재정에 반영하던 제도뿐이었다.
안성 관련 2019년 반영액 6억4,650만원…애초 보전도 미미
안성시가 본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송·변전시설 관련 기준재정수요 산정액은 2017년 2억7,800만원, 2018년 5억9,300만원, 2019년 7억4,800만원이었다.
2019년에는 조정률 0.8643072를 적용한 6억4,650만1천원이 보통교부세 산정에 최종 반영됐다. 이는 주민이나 토지 소유자에게 지급된 직접 보상금이 아니라 안성시의 추가 행정수요를 계산할 때 반영한 일반재원이다.
당시 안성에서 송·변전시설 관련 산정에 포함된 지역은 105.195㎢에 달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행정수요를 인정하고도 최종 반영액은 연간 6억여원에 그쳤다. 주민의 재산권 손실이나 안성시의 도시계획 제약을 직접 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도 2020년부터 완전히 끊겼다.
안성시는 제도가 재도입되더라도 시 전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확한 예상액은 정부가 최신 통계와 산정기준을 마련해야 알 수 있지만, 2019년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성시는 “재정 규모 자체의 증가보다 국가 전력 인프라 구축에 기여하는 지역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과 재정 형평성 확보 측면에서 재도입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공동 건의의 핵심은 몇억원의 교부세를 더 받는 데 있지 않다. 국가 전력망의 혜택은 수도권 산업과 전력 소비지역이 누리는 반면 그 비용과 부담은 송전시설이 들어선 지방정부에 집중되는 불공정한 재정 분배구조를 바로잡아 달라는 요구다.
산업의 혜택은 다른 지역에, 송전망 부담은 안성에
안성의 송전시설은 안성시민이 사용하는 전력만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안성은 기존 765㎸·345㎸·154㎸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에 전력을 보내는 주요 통로이자 전력 거점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용인 남사·원삼과 평택 고덕 반도체산업단지 등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망도 추가로 추진되고 있다. 안성에는 이미 대규모 변전소와 송전망이 구축돼 있어 앞으로 다른 국가 전력망 사업에서도 경유지나 연결 거점으로 다시 선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번 전력망의 거점이 된 지역에 후속 송전망이 계속 연결되면서 부담이 누적되는 구조다.
반도체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지역과 기업에는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법인지방소득세 등 경제적 이익이 돌아간다. 반면 생산시설을 가동할 전력을 보내는 안성에는 송전탑과 초고압 송전선로에 따른 재산권과 지역발전의 제약이 남는다.
송전탑이 세워지는 부지와 전선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토지인 ‘선하지’는 정상적인 건축과 개발이 사실상 어렵다. 일부 농업적 이용이 가능하더라도 토지 소유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기 어렵고, 이러한 제약은 송전시설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된다.
법정 보상범위를 벗어난 인접지역도 주거·산업시설 입지와 토지 거래 기피, 재산가치 하락, 경관 훼손과 주민 갈등 등 실질적인 부담을 떠안게 된다. 송전선로가 지역을 가로지르면 해당 토지를 토대로 수립되는 주거·산업·관광·교통 등 안성시의 장기 도시계획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 전력망의 위치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주민 개인의 재산권뿐 아니라 지역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선택권까지 장기간 제한되는 셈이다.
헌법은 공공필요에 따라 개인의 재산권을 수용·사용하거나 제한할 경우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기사업법도 타인의 토지 위나 지하에 송전선로를 설치해 손실이 발생하면 정당하게 보상하도록 명시한다. 송전시설이 개인의 재산권에 실질적인 손실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법률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두 겹의 불공정…중앙·지방 재정분담과 지역 간 세수 불균형
송·변전시설 문제에는 두 겹의 불공정이 존재한다. 국가 전력망의 비용을 중앙정부가 충분히 책임지지 않고 시설이 들어선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불공정, 산업적·재정적 혜택을 얻는 지역과 송전망 부담을 감당하는 지역이 서로 다른 지방정부 간 불공정이다.
송·변전시설 수요를 보통교부세에 다시 반영하는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불공정한 재정 분담을 바로잡는 출발점이다. 법인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는 산업 수혜지역과 영향지역 사이의 세수 불균형을 조정하는 방안이다.
이번 공동 건의는 산업의 혜택과 기반시설 부담을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는 김보라 안성시장의 기존 입장과도 맞닿아 있다.
김 시장은 용인 반도체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 생산시설이 들어선 지역에는 기업 투자와 일자리, 법인지방소득세 등 경제적 효과가 집중되는 반면 전력과 용수 공급, 방류수 등 산업단지 운영에 따른 부담은 안성을 비롯한 인접지역으로 확산한다고 지적해 왔다.
김 시장은 지난 7월 “하늘과 하천은 행정구역의 경계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며 “하나의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그 영향과 부담도 여러 지역으로 함께 이어진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의 혜택은 함께 나누고 부담도 공정하게 책임지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공정한 상생”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시장은 이번 공동 건의와 관련해 “송·변전시설 주변 주민들의 삶의 질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정수요는 적용 기간이 끝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국가 전력망 구축에 따른 부담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지 않도록 측정항목 재도입을 관계 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소급 적용 어렵다”…제도 공백 책임까지 피해지역 몫인가
안성시는 제도가 재도입되더라도 건설 예정 송전선로는 통계자료가 없어 곧바로 반영하기 어렵고, 현재 운영 중인 시설을 중심으로 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전선로는 계획 발표와 입지 선정 단계부터 주민 갈등과 개발 불확실성을 발생시킨다. 실제 시설이 완공돼 운영 통계에 잡힌 뒤에야 교부세에 반영한다면 계획과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 부담은 산정에서 빠지게 된다.
안성시는 일몰 이후 기간에 대한 소급 적용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현행 교부세 운영에 관한 행정적 설명일 뿐, 2020년 이후 누적된 지역 부담에 대한 국가 책임까지 없애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기존 교부세를 과거 연도까지 다시 계산해 지급하기 어렵다면 특별지원이나 새로운 산식에 누적 부담을 가중하는 방식,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사업 확대 등 별도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 공백으로 보전받지 못한 부담까지 다시 피해지역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도입 이후 늘어나는 교부세를 송전선로 주변지역에 별도로 사용할 계획이 현재 없다는 점도 한계다. 보통교부세는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일반재원이지만, 국가에 지역의 희생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함께 확보한 재원을 피해지역에 어떻게 환원할 것인지에 대한 안성시의 원칙과 계획도 필요하다.
김성환 장관 “피해 주민에게 직접 보상”…제도화로 이어져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안성을 방문해 양성면 송전선로와 LNG발전소 관련 현장을 살펴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김 장관은 “지역에서 제기하는 우려와 요구를 깊이 공감하고, 피해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이 언급한 주민 직접 보상과 보통교부세는 대상과 성격이 다르다. 보통교부세는 지방정부의 행정·재정 부담을 반영하는 일반재원이고, 주민 직접 보상은 재산권과 생활환경 피해를 입은 주민에게 돌아가는 제도다.
따라서 교부세 산정항목 재도입과 함께 토지 소유자와 주민에 대한 직접 보상, 피해지역 발전지원 대책도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 장관의 발언이 일회성 약속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와 재원으로 이어지는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과거 제도 단순 복원 아닌 종합대책 내놓아야
과거 송·변전시설 산식은 주변지역 면적에 표준행정수요액의 10%만 적용했다. 이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으로 재산권 제한과 토지가치 하락, 도시계획 제약, 주민 갈등과 안전·환경관리 비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기존 송전탑과 송전선로의 수·전압·운영기간, 외부지역 전력 공급 기여도, 토지 이용과 도시계획 제약, 주민 갈등과 안전·환경관리 비용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교부세 산정기준과 반영률을 현실화해야 한다.
계획·건설 중인 신규 전력망의 부담과 일몰 이후 누적된 행정수요를 반영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에 지급하는 교부세와 별도로 주민 직접 보상과 피해지역 발전지원을 결합한 종합대책도 필요하다.
전국 13개 시·군의 공동 건의는 보통교부세 몇억원을 더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국가 전력망으로 인한 특별한 희생을 지방재정의 정당한 수요로 인정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불공정한 재정 분담을 바로잡으라는 요구다.
정부는 과거 항목을 형식적으로 복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누적된 송전시설과 외부 전력 공급 기여도, 개인의 재산권과 지방정부의 도시계획 제약을 현실적으로 반영해 교부세 분배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송전탑과 송전선로는 수십 년간 남는데 국가의 재정적 책임만 3년 만에 일몰됐다. 과거의 미미한 교부세 항목 하나를 되살리는 수준에 그친다면 가래로 막아야 할 구조적 불공정을 호미로 덮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통교부세 분배구조의 개선은 국가 전력망을 둘러싼 불공정을 바로잡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최용진 기자 news66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