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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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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이름의 속임수

기사입력 2026-07-2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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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열 성공회대학교 교수

[기고] 삼성과 SK가 호남에 800조 원이 넘는 반도체 투자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지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이에 언론은 호남 반도체 시대’, ‘지역 발전의 전환점’, ‘늦게 찾아온 기회라는 제목을 쏟아낸다. 오랫동안 산업화에서 소외됐던 호남이 마침내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이런 기대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800조 원 투자라는 거대한 숫자 뒤에서 우리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기업의 투자는 지역을 돕기 위한 지원 사업이 아니다. 삼성과 SK가 호남의 균형발전이나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수백조 원을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투자는 더 많은 이윤과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의 축적 과정이다.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생산능력 확대가 시급해지자, 기업은 새로운 생산 공간을 찾고 있다. 전력과 용수가 풍부하고, 토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호남은 자본의 입장에서 지극히 매력적인 생산 조건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 언론은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의 장점으로 풍부한 전력과 용수, 신재생에너지, 값싸고 안정적인 용지를 언급했다. 기업의 시각에서는 경쟁력이지만, 지역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구에게 값싼 땅인가. 누구를 위한 풍부한 전력과 용수인가. 산업단지와 송전망, 도로와 용수 시설을 구축하는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그리고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비용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생산 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확대할 수 있는 공간을 끊임없이 찾는다. 토지와 에너지, , 노동력은 이 과정에서 생산 조건으로 편입된다. 반면 도로와 전력망, 산업용수와 같은 기반 시설의 상당 부분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재정을 통해 제공된다. 이익은 기업에 귀속되지만, 생산 조건을 만드는 비용과 위험은 사회가 부담하는, 이른바 비용의 사회화와 이윤의 사유화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은 이러한 구조를 묻지 않는다. 그 대신 ‘800조 투자’, ‘4개 반도체 팹’, ‘수천 개의 일자리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투자가 이루어지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지역 경제가 성장하며, 결국 주민 모두가 잘살게 될 것이라는 낯익은 개발 성장 공식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 공식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대규모 생산시설이 지역에 들어선다고 해서, 생산된 부가 지역에 남는 것은 아니다. 핵심 연구 인력과 고임금 노동자는 외부에서 유입되고, 지역에는 하청과 서비스 노동이 집중될 수도 있다. 지역이 토지와 전력, 용수와 기반 시설을 제공하지만, 기업의 이윤과 의사결정 권한은 수도권의 본사와 금융자본으로 이동한다. , 공장은 지역에 있지만, 부는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투자액이 아니라, 생산된 가치가 누구에게 귀속되고,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있다.

환경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사용하는 산업이다. 그러나 현재의 보도에서 호남의 자연환경은 주민의 삶의 터전이 아니라 풍부한 자원으로 묘사된다. 햇빛과 바람은 신재생에너지가 되고, 농지는 값싼 산업 용지가 되며, 물은 반도체 생산을 위한 산업용수가 되었다. 자연과 공동체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생산 조건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과정을 오랫동안 경험해 왔다. 산을 깎고 강을 막고 농지를 산업단지로 바꾸면서 언젠가는 모두가 잘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삼성이 잘돼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 결과, 실제로 엄청난 생산력과 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빈곤과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수도권의 집중과 지역 소멸은 오히려 심화됐다. 문제는 생산력이 부족하거나,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가 아니다. 생산된 부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결정하는 경제 구조이며, 아무리 과잉 생산해도 빈곤이 강화되는 독점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또다시 개발과 성공의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삼전닉스가 호남에 온다’, ‘호남이 드디어 발전한다’, ‘지역민이 환영한다는 방식이다. 아직 투자 일정과 고용 구조, 환경 비용과 공공재정 부담조차 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이미 성공의 결론을 내놓고 있다. 이는 저널리즘이라기보다 자본과 정부가 제공한 미래의 청사진을 지역 주민에게 전달하는 홍보이며, 실제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을 부정하는 프로파간다, 즉 선전과 선동이다.

언론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 가운데 직접 고용과 하청 노동의 비중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지역 대학과 기업은 새로운 생산 생태계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 막대한 전력과 용수의 사용, 송전망 건설과 산업폐수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언론의 질문은 이제 투자 규모와 개발의 속도가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향해야 한다. 자본의 투자가 곧 지역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이 지역 주민 개개인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언론은 개발이라는 이름의 속임수를 멈추고, 지역민의 눈과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윤장열 성공회대학교 교수



자치안성신문 (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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