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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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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문화

기사입력 2026-07-0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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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안성4.1독립항쟁기념사업회 회장

[기고] 근대에 와서 카페가 유행하고 있다, 오래전 세상을 뒤 덥던 다방과 비슷하긴 해도 다른 면이 있다, 다방엔 레지, 마담 하는 서비스 종사자가 있지만 카페엔 그런 종사자가 없고 오직 차와 빵 외에 앉을 자리와 주위의 분위기가 있다는 게 차이인 것 같다. 차와 빵도 직접 가져다 먹는다,

애초에 카페는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제공하는 대중장소로 시작한 것 같은데 지금도 규모가 큰 시설이 있어서 그렇지 주로 빵과 커피를 팔고 있는 장소가 되어 있다, 의외로 다방 이상으로 숫자도 많고 규모도 부유한 사회를 반영하듯 맘모스 카페가 도처에 산재해 있어 많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규모 큰 카페가 규모 작은 카페를 어렵게 만드는 현상이 또한 도처에 눈에 띤다,

사실 말이지 카페는 일방, 낭비를 부추기는 장소이며 남비(濫費)문화다, 실상을 보면 점심 이 되었던, 저녁이 되었던 때가 되어 비싸든, 싸든, 끼니음식으로 잔뜩 배를 채우고 곧바로 카페에 와서 별 영양가 없는 커피나 음료수를 커다란 컵에다 잔뜩 한잔은 물론, 비싼 빵까지 꾸역꾸역 먹어치우니 60~70년대, 기나긴 세월을 허기진 배를 달래며, 배 부르는 것이 원이던 시절을 살아온 구식 노년들에게는 분명히 못마땅한 낭비문화임에 틀림없다, 아니 큰일 날 기막힌 세태임에 분노를 터트리고, 더구나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어른은 그렇다 치더라도 따라온 아이들까지 똑같은 문화에 젖어드니 더욱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참 얼마 전까지 얻어먹는 나라의 백성이었음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단지 그것을 겪은 사람이 있고,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겪어보자 못한 사람은 도저히 그 상황을 인식할 수가 없을 것이다, 팔질인 내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다닐 당시의 한때는 우유를 말려서 가루로 만든 가루우유를 학교에서 배급을 주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국산은 아니고 외국에서 원조해 온 것이다, 그리고 주둔 미군들이 휴일을 통하여 사냥을 나오면 그들이 타고 온 짚차를 따라다니며 서툰 영어 섞어 기브 미 짭짭아니면 기브미 껌을 외치며 동네 아이들 한 떼가 쭈욱 따라다니며 혹여 먹을 것이라도 던져주면 까마귀 떼 먹이에 모여들 듯 모여들어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을 연출한 과히 자랑스럽지 못한 세월도 감내해서 했던 우리들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우리는 양()자 들어가는 사람, 문화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백성이었으니까! 허지만 그 문화가 우리를 오늘날 선진대열에 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었음에 마냥 수괴(羞愧)에 머무를 수는 없으리라,

우리 선대나 우리의 어린 시절은 팔자걸음을 걸으며 장죽으로 거드름을 피던 양반으로 살던 시절이 우리들의 참모습이었던 같다, 비록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해 참혹한 변란을 몸소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행한 역사를 버릴 수가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같잖은 팔자걸음이 비록 그게 허세였을 수도 있고, 속빈 강정마냥 거드름만 피는 의세(疑勢)일지라도 당당한 의지가 깃들어 있고, 세상경영의 대의가 서려 있음에 경홀히 여김은 온당치 못하다고 할 것이다.

진리, 또는 옳음에는 상대성이 있고, 절대성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불변하는 진리라도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가설 앞에 50년대, 60년대의 암울한 시기를 지나 오늘날 세계경제대국 10위권에 육박하는 부국 대한민국 시대에는 우리의 사고나 가치 기준도 변해야 되겠다,

지지리 못 입고, 못 먹던 시절에는 절약이 경제부흥의 요체였고, 아껴야 미래가 나아진다는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우리의 삶을 지배했지만 이제 세계경제대국 10위권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의 시대에는 부국에 걸맞은 가치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고 사료된다.

나는 가난한 시절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어쩌면 아끼는 습성이 몸에 밴 팔질의 나이다 보니 몇 안 되는 또래의 연갑자 사이에 낭비가 심한 연배에 속하는 어처구니없는 늙은이로 취급받기 일쑤다,

언제부턴가 홀짝홀짝 마시던 커피가 습성이 되어 식사 후에는 의례 그 카페를 즐겨 찾다보니 자주 듣는 핀잔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절약이 우선시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소비가 대접받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지난날은 절약이 미덕이었고 가치의 기준이었지만 지금, 여기 근대화된 2025년 기준, 지디피 세계 12위의 대한민국에서는 소비가 권장되는 사회로의 변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지 절약이 나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절약의 끝에는 쌓이는 재화가 있지만 낭비의 끝에는 공허한 흔적만 남는다,

그러나 소득이 증가하므로 소비 금액도 덩달아 증가하게 되는데 소비라는 개념을 단순히 재화나 서비스의 사용이라는 합의적 개념보다는 좀 더 광의적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소비는 재화를 사용함으로써 그 재화가 소멸되는 과정을 얘기했지만, 인간의 다양하고 무한한 욕구가 경제주체의 상이한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개개인의 경제적 복지를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행위로써 정의되어야 한다.

인간의 소비활동이 경제적 복지의 자원을 획득하는 행동 영역이라면 소비 행동은 소득을 주된 근거로 인간의 욕구 충족을 실현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욕구 충족을 통해서 우리는 만족감을 얻고, 그 결과 우리는 한때를 행복에 겨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는 단순한 재화의 써 없애버림으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만족감을 향유하게 되고 소비가 낭비를 아우르는 선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활동의 극대화는 기업과 노동자가 합심하여 생산한 생산재가 소비되어야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아울러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단순한 소비가 아닌 선한 경제활동에도 이바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요즘 낭비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카페를 즐기는 사람에 속한다,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기고 또 문을 닫는다, 카페의 종류도 다양해서 한두 평 정도의 방에 티 테이블 서너 개 놓고 영업하는 영세카페로부터 축구장 정도는 안 되어도 대단히 규모 큰 카페까지 요소요소에 문을 열고 고객을 부른다, 특히 주말이면 엄청난 인파가 규모 큰 카페로 몰린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점심이 되었던, 저녁이 되었건 맛있는 식사 잘 마치고, 카페로 몰릴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거기엔 치열한 삶의 현장을 잠시 비켜서 편한 만남과 교제의 장이 마련되기 때문이리라! 옛날 다방에선 사업 비즈니스, 또는 치열한 다툼 등이 있었으나 카페는 넓은 자리, 좁은 자리 가리지 않고, 둘러앉아 깊은 삶의 문제를 떠난 일상의 유쾌한 대화가 서로를 반긴다, 그 자리에는 다양한 계층이 함께하여 음료를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어린이로부터 머리가 하얀 어른이 합석하여 그 자리에서 헤어지면 거의 소멸될 일상 얘기로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나 우리 집 같은 경우 따로 사는 형제들이 멋처럼 다모여 속살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니, 정의가 도타워지고 멀어지는 가족애가 되살아난다, 넓은 홀 가득 메운 가운데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카페 손님들을 보면서 시끄럽긴 해도 세상을 본다, 현대를 느낀다, 하나같이 웃음기 머금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유복을 건진다.

김태수 안성4.1독립항쟁기념사업회 회장



자치안성신문 (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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