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호 전 계성여자고등학교 교사
#1. 아버지를 소환한다.
생일을 맞이해 모처럼 아내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주꾸미볶음을 먹었다.
“(청하를 반주로 먹으며) 당신이랑 둘이 밖에 나와 밥을 먹은 게 얼마 만이야. 당신이랑 밥을 먹고 있으니, 아버지랑 엄마 생각이 나네.
우리 아버지 정말 멋진 분이셨어. 가끔 장날에 엄마를 자전거에 태워 장을 보러 가셨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인데, 당시 읍내에 가는 신작로가 비포장이었거든. 그 길을 짐 자전거에 엄마를 뒤에 태우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머슴까지. 대가족을 건사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엄마한테 술을 사주려고 장에 가신 거야. 약주를 못하시는 아버지가 고생하는 엄마 마음 풀어주려고 장날 장도 볼 겸 엄마 술 받아주신 거야. 당시에는 부부가 길을 가도 남자는 앞에 가고 여자는 남편 뒤를 따라가던 시절이었거든. 그 시절에 장날 마누라를 자전거에 태우고 장을 보러 간 사람은 아마 안성에서 아버지밖에 없었을 거야.
그런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나 들으라고 흘리는 말로 ‘계집 사내가 저게 뭐냐’라고 하셨던 게 생각나.
장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술에 취해 방에 들어가 주무시고”
“당신 아버지는 아내에게 잘했는데 당신은 왜 그래”
“(깔깔 웃으며) 엄마는 아버지에게 말대꾸도 못 하셨어. 당신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내가 화를 내지. 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지만”
“(며칠 전 아내에게) 요즘 해가 길잖아. 새벽부터 일을 하니까 참 때가 되면 허기가 지더라.”
“내가 김밥 만들어 놓을게”
참 시간에 집에 들어와 우두커니 혼자 앉아 막걸리와 김밥으로 참을 먹는데 김밥을 싸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같이 고생하는데’
#2. 시골 마을 지역사회에서 식당을 하다 보니 단골손님들과 밥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잦다.
“(다섯 명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지석이형, 홍어 먹을 줄 알어?”
“난 입천장이 벗어질 정도로 삭힌 홍어가 좋아. 확 삭힌 거”
“안성에는 홍어를 푹 삭힌 게 없어.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할 테니까. 홍어는 내가 내고 술값만 내”
우리는 날짜를 잡아 식당 점심 영업이 끝나고 세 시경에 모였다.
“전주가 고향인 직장 동료 모친상에 문상을 간 적이 있는데, 밥상에 홍어탕을 내놓더라구”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홍어를 즐겼다.
이웃 동네 명철이 형이 처가에서 홍어를 보내왔다고 홍어를 가져왔다.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감사한 마음에) 명철이형, 혹시 병어회 먹을 줄 알어?”
“없어서 못 먹지”
“이 계절에는 인천 사람들은 병어회를 먹어. 새꼬시로 먹는데 씹을수록 고소해. 고마워서 내가 다음에 병어회 낼게”
지역사회에 식당을 하다 보니 이런 인간관계와 만남이 가능한 것 같다.
#3. 미양농협남자 산악회는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 산행(나들이)하러 간다. 평균 나이대가 75세 정도이니 1시간가량 둘레길을 걷거나 산 중턱까지 무난한 길을 걷는다.
버스가 출발하면 회장이 인사를 하고, 대장이 산행 일정과 목적지에 관한 정보를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사무장이 이런저런 행정 사항을 발표한다. 나는 ‘대장’직을 맡고 있다.
“오늘 가는 곳이 (김포) 애기봉(북한이 보이는 접경지역)인데. 나는 자그마한 봉우리라 애기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애기가 기생 이름이더라고요. 본래는 쑥갓머리산이었는데,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평안감사는 자신이 총애하던 기생 애기(愛妓)를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는데. 피난 도중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하류 구간을 건너기 직전, 평안감사는 청나라 군대에게 포로로 붙잡혀 북으로 끌려갔데요.
홀로 강을 건너 김포 땅에 남겨진 애기는 매일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올라, 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며 감사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결국 감사를 향한 그리움으로 인해 병이 든 애기는 죽음을 앞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님이 가장 잘 보이는 저 봉우리에 묻어달라고 했데요.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절개와 애틋한 사랑에 감동하여 유언대로 쑥갓머리산 정상에 장사를 지내주었고,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이 봉우리를 기생 애기의 이름을 따서 ‘애기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네요. 피난을 가면 본부인도 같이 갔을 텐데 기생도 대동하고 피난을 갔다는 게 참 웃기네요”
송영호 전 계성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