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있는 요즘. 서운면 인리를 집성촌으로 살아가고 있는 영천이씨 가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동안 17대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그곳에는 여전히 전체 주민의 8할 이상이 친인척이라 말할 만큼 여전이 오래전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천이씨 종가 홍경헌 종부를 만나 지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500년의 역사를 가진 종가의 종부
서운면 인리에 접어들자 몇몇 사람들이 길 한 켠에 모여 가을 바람을 등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경헌 종부를 만나기 위해 찾았다는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집안 어른을 왜 찾냐고 묻는다.
그런 물음이 오가는 와중에 지척에서 물끄러미 시선을 주시 하던 노파가 자신이 홍경헌 종부라고 말을 한다.
세련미보다는 우직함이 묻어나는 한옥. 동네 큰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대문을 찾아 90세의 노파는 자신의 얼굴 주름 같은 꼬불 길을 통해 종부로서 삶을 살아온 종가로 향한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의 이야기가 된다.
고향인 천안 입장에서 두명의 동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생활해오던 꽃다운 16세 소녀 홍경헌 종부는 안성으로 시집온 후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그곳.
영천 이씨 가문의 종가에서의 삶을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16살은 어리지만 그때는 시집을 갈 나이었어요. 시부모님을 비롯해 10명이 넘는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시집을 왔죠. 종가란 것을 알고 시집을 온거니 마음을 단단히 먹었죠. 긴 세월동안 대를 이어 가며 살고 있는 집안의 맏며느리의 삶과 함께 안성에서 생활이 시작된거에요”
배우고 또 배워도 늘 긴장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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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운면 인리의 영천이씨의 종가집의 장독대(왼쪽) |
종가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기에 앞서 홍경헌 종부는 아버지에게서 종부가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종부로서 ‘집안을 잘 통솔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등 혹시나 종가로 시집가는 딸아이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가르쳤을 것이라.
종가에 피해를 주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까 늘 조심조심 하는 종부의 뒤에는 시댁 가족들이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종가로 시집 와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소학교 4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시집을 와 시할아버지께 한문도 배웠어요. 무엇보다 종부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것들을 시어미니께서 하나 하나 가르쳐 주셨어요. 시집살이란게 없었어요. 며느리가 종부로서 삶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나 하나 가르쳐 주셨죠”
그런 가르침이 종부로서의 삶에 근본이 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 얼마나 어려운 분들인가?
시조부와 시부모님 그리고 시댁 가족.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달래 줄 수 있었던 건 고향에 살고 있는 동생들과의 추억.
하지만 종부의 삶이란게 그렇게 녹녹지 않은 것. 3년이 지난뒤에야 고향을 찾아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단다.
“고향에서 뛰어 놀던 동생들이 그리워 몰래 장독 뒤에서 울며 그리움을 달랬어요. 종부는 생활이 힘들거나 시댁과의 관계가 나쁘거나 한 것 아니지만 외로움이란게 있잖아요. 부모님도 그립고 동생들도 보고 싶었지만 아무대서나 울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어요”
제사상 차리며 다음 제사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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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에 10번이 넘는 제사를 모시는 홍경헌 종부. 제사에 사용할 제기를 깨끗이 닦고 있다. |
종부로서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집안 대소사. 그중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것은 종부의 중요한 의무 사항.
한해 10분의 제사를 모셔야 한다고 하니 명절 차례까지 더하면 매달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모셔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맞어. 매달 제사를 모셔야 하는 처지 였어요. 종부로서 제사 음식을 잘못 준비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늘 불안했죠.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서른가지가 넘은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시누이의 손을 빌려도 몇날을 고생해야 했어요. 종가 남자들은 잘 몰라요. 그게 얼마나 힘든지 말이에요. 정말 제사상을 차리면서 다음 제사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어요”
잔뜩 새 식구를 주시하는 종가어른들에게는 사소한 실수라도 자칫 크게 흠 잡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조심 행동을 해야 했을 종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70년 전 처음 종부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와 지금에는 큰 변화가 있다. 종가도 이미 79년도에 한번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수 백년 전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는가 하면 종부의 얼굴에서 분홍빛이 가득한 앳된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수십명의 자손들이 찾아와 매년 꼬박꼬박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그 많은 손님을 치르는 일에는 바뀐 게 하나 없다.
“제사를 모시는 것이 여간 힘들어요? 하지만 예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편해 졌죠. 음식을 하나 하나 만들던 옛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죠. 하지만 제사 음식이란게 정성이잖아요. 지금은 나이를 먹어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평생 조상들의 제사 음식을 책임지고 장만하는 것이 종부의 운명이라 봐요”
영천 이씨 종가의 한 곳에는 오래된 제기가 자리하고 있다.
놋으로 만든 제기에는 홍경헌 종부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듯 종부를 닮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
500년 가문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세월에 흐름과 함께 진행되는 육체의 노화는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들과의 동거를 냉혹하게 거부하고 홀로 종가를 지키고 있는 홍경헌 종부.
마지막 까지 종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함께 살기를 권하죠. 하지만 안가요. 건물이 좋은 집은 아니지만 500년동안 17대가 살아온 이곳을 종부가 떠날 수는 없잖아요. 끝까지 남아서 맏며느리의 소임을 다해야 해요”
몇 해 전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적었다는 홍경헌 종부는 기억 저편에 가물가물하는 추억과 배움을 적어 두었단다.
자신을 기억해달라기 보다는 시부모님와 부모님께 배운 삶을 살아가는 옳은 방법을 자식들과 후손들도 이해하고 따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다고 한다.
70년을 묶어 온 쪽머리를 4년 전에 싹 뚝 자르고 개화기 신여성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16세의 어린종부는 어느덧 삶을 회고할 나이에 이른 것이다.
2009년 추석을 일주일 여 앞두고 만난 영천 이씨 17대 종부 홍경헌씨.
올해도 여느해와 마찬가지의 종부로서 추석 준비를 걱정하며 종가 구석구석을 돌아 본다.
임영조 기자 lim5180j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