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9월 중순이 되면 안성 곳곳에 넘치는 포도 내음으로 군침이 돈다. 어디를 가더라도 탱글탱글한 포도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그 맛만큼 소비자와의 흥정도 재밌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안성 농산물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공도에 거주하는 농아인 농민 김순옥씨를 통해 마음으로도 안성 농산물의 우수함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취재는 수화와 필담을 병행하며 진행되었다)
직접 지은 과일과 농산물을 거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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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부터 작은 노점을 구해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농민의 포도도 판매하고 있다. |
농심이란 게 그렇단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농작물에게 말을 건네고 무어라 대답하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마치 자식을 키우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이란 게 소리를 내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한다고 하니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김순옥씨와 농작물간의 대화는 어쩜 더 속 깊은 이야기 일지 모른다.
“20년이 넘게 농사를 지으며 농작물에 대한 애착이 커졌어요. 사람들과는 대화가 힘들지 몰라도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배나 고추와는 마음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잘 자라달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는데 그 말을 이해하는지 올해도 풍년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 양이 많지 않다보니 판매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주위에서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몇 몇 사람들에게 배며 고추를 팔고는 있지만 마땅한 거래처도 없다.
“어느 날은 봇짐을 싸 길거리에서 팔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협회에 가서 팔기도 하죠. 양이 많지 않으니깐 특별한 판매처가 없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참 좋은 농산물인데 말이죠”
그나마 올해는 몇몇 아는 사람들과 함께 조그마한 길거리 노점을 시작했단다.
직접지은 배며 고추뿐만 아니라 같은 장애를 앓고 있는 농민이 지은 포도까지 허름하지만 알찬 가게를 마련한 것.
말이 필요 없는 안성 농산물의 맛
가게에는 김순옥씨뿐만 아니라 3명의 사람이 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함께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며 그렇다고 손님도 아니다.
그저 같이 이야기를 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이들은 멍하니 손님의 얼굴과 손길만 바라봐야 한다. 모두가 청각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외출을 해도 특별히 갈 곳이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잖아요. 이곳에 모여 이야기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요. 하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그저 손님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죠”
말을 하지 못하다 보니 장사가 가능할까 싶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단다.
손님들이 찾아와 필요한 만큼 챙겨 계산을 하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인사까지 하는 것을 느낀단다.
그도 그럴 것이 안성 농산물의 맛은 굳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최우수라는 것이 김순옥씨의 설명이다.
“안성 배나 포도는 전국적으로도 맛있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손님들이 찾아와서 배와 포도를 한입 먹어 보고는 구입해 가세요. 그렇다 보니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손님들은 찾아와요. 안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농산물을 구입해주시는 소비자께 감사하죠”
장사라면 으레 볼 수 있는 흥정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속있는 장사를 하는 모습이 여느 가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안성 농산물의 맛을 홍보하는 김순옥씨의 행동에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마치 안성 농산물과 같은.
“아무리 맛있다, 말을 해도 맛없는 것이 맛있어 지진 않잖아요. 직접 먹어 보지 않는 이상 그 맛을 모르죠. 저는 말을 하지 못해 맛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요. 제가 직접 먹어보고 표정으로 말을 하죠. 사람들은 그 표정을 믿고 또 과일의 맛을 믿는 거죠”
농업 현실에 자신감 잃어 가는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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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은 배와 고추를 팔고 있는 김순옥씨 |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질 좋은 농산물도 있으니 농민들에게 가을은 먹지 않아도 배부른 시절이라 생각되어 진다.
물론 한해 농사를 지어 풍성한 농작물을 팔 수 있으니 넉넉함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넉넉함이란 게 풍요 속 빈곤이란다.
올해도 과일 가격이 하락해 지난해만 못하다는 김순옥씨는 자식 같은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이래저래 미움을 받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단다.
“가격이 많이 떨어 졌어요.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찾아오는 손님들은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더 깎아 달라는 소릴 해요. 뭐라 말을 하지 못하니깐 답답해요. 농업이 어렵다고 말을 하고 싶고 농민들을 위해서 안성 농산물을 더 이용해달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아쉽죠”
부자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버렸다는 농민들의 마음에는 자심감이 점점 사라진단다.
열심히만 하면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던 농민들은 해도 안 되는 것 왜 해야만 하냐며 한숨을 내 쉰단다.
“말했지만 안성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맛이 좋을 것이라 봐요. 그만큼 농민들이 열심히 키워낸 것 아닐까요? 그런데 그 좋은 농산물들이 대접도 못 받고 있으니 농민들이 무슨 힘이 나겠어요. 한숨만 나오죠. 곧 추석인데 농산물 가격만 계속 하락한데요. 사람들이 농산물을 싫어하는가 봐요. 농민들은 너무 힘들게 하는 가을이 너무 오래가고 있는 것 같아요”
힘내자! 우리 농민들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도 농업이란 게 쉽게 단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농민들이 아닌가?
김순옥씨는 자신감을 잃어 가는 농민들이 기운을 낼 수 있는 안성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한다.
안성에서 농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그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팔 수 있다는 것은 보람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농업이 어렵잖아요. 우리 농민들이 늘 힘들게 살아 온 것처럼 앞으로도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실일지 몰라요.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농업이란 게 돈 안 된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농민들이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자식 같은 농산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김순옥씨가 팔고 있는 배와 포도.
그리고 고추를 비롯한 몇몇 농산물들.
길을 지나다 잠깐 들리는 손님 중 열에 두 세명의 손에는 과일이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그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애를 나눌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 입속에 들어가는 과일은 맛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대화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가족. 농민들도 우리의 그런 가족인 것이다.
임영조 기자 lim5180j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