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성인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 대한민국.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 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안성천변에서 조용히 3년 동안 독서를 하고 있는 82세의 김윤중 할머니.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책을 통해 마음의 편안함을 찾는다는 김윤중할머니를 만나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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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바닥만 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김윤중 할머니. |
처서가 지나고 이른 새벽 즈음 불어오는 바람이 다소 싸늘한 요즘. 이른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요즘인 것이다. 가을이라 하면 무엇보다 책 읽기에 더 없이 좋은 시절일 것이다.
네모반듯하고 에어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방안이 아니라 햇살이 약간씩 들어오는 나무 그늘에서 하늘에는 잠자리가 날고, 곳곳에 활짝 핀 코스모스 핀 안성천변에 김윤중 할머니는 한 시간째 독서를 하고 있다.
젊은시절엔 독서할 시간이 어디 있어?
고향인 청주를 떠나 안성으로 온지 20년이 되었다는 김윤중 할머니를 만난 것은 안성천변이다.
아직은 더운 열기가 묻어 있는 바람을 잠시 피하기 위해 찾은 그곳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노파의 모습은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손바닥만 한 책을 들고 주위 사람의 말에는 전혀 무관심하듯 팔순의 고령에 안경도 없이 깨알만한 크기의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김윤중 할머니는 곁에 사람이 앉은 지 10여분이 지나서야 눈길을 준다.
“책 읽는거? 젊었을 때는 정신없이 보냈어. 책 볼 시간이 어디 있어? 난리 통에 자식들 먹어 살려야 할 판이었는데. 환갑이 지나고 하니 조금의 여유가 생겼어. 그때부터 책 읽은 것이 좋아 지더라고. 요즘은 집에 있는 것 보다 밖에 나와 책 읽는 것이 좋아. 바람도 시원하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말이야”
70여 년 전 당시 집안의 딸자식이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가 많이 않았던 그 시절이었지만 아버지의 의지로 6년간 소학교 생활을 한 것이 지금엔 큰 도움이 된다며 책 곳곳 적혀 있는 한문도 쉽게 읽어 가며 젊은 시절 읽지 못한 책들을 다 읽어 보겠다는 마음이란다.
“아마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어릴 적에 배울 기회가 많이 없어 한문뿐만 아니라 한글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거야. 다행이도 난 한글과 한문을 배웠고 일제시대때 일본어도 배웠어. 더 다행스럽게 시력도 아직 괜찮아 독서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젊은 시절에 하지 못한 것들을 이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러워”
잊혀지는 기억들이 싫어 독서 시작
김윤중 할머니가 독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원래가 독서를 좋아 하는 성품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나이로 인한 기억력의 감퇴를 극복하기 위함이란다.
한번 읽은 책의 내용을 책을 덮는 순간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다시금 읽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읽을때 마다 새로움을 느낀다니 너무 나쁜 것만은 아니다는 것.
“나이를 먹으니깐 기억력이 자꾸 떨어져. 그래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찾다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한거야. 읽은 책은 많이 없어. 한 달에 한권 정도가 전부야. 하지만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이 즐거워져. 사람이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이야.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워”
책을 읽는 즐거움에 사로 잡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으면 책을 펼쳐 읽는다는 김윤중 할머니는 안성에서도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이 곳곳에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낸다.
일주일에 2-3번 찾는 다는 안성천변도 바람이 불어 시원하니 좋지만 읽고 싶은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다.
“안성천에 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으면 참 좋아. 하지만 비가 오면 우산 펴고 책을 읽을 수는 없잖아. 안성 곳곳에 안성시민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안성시민들이 마음의 양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말이야”
삶의 모든 것이 적혀 있는 천수경이 기억에 남아
최근 들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분야는 ‘불교’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종교로서 믿음을 가지고 보았던 불교를 이제는 책을 통해서 이해를 하겠다는 것이다.
아들의 권유로 처음 불교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김윤중 할머니의 집에는 벌써 20여권이 넘는 불교책이 있단다.
“안성으로 오기 전 서울에서 생활을 했는데 불교를 믿었어. 그때는 종교로서의 불교였지. 믿음으로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불교 관련 책을 읽어 보니깐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적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어”
이런 김윤중 할머니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천수경이란다. 수십장이 넘는 내용이지만 20년 전부터 읽어 오던 책이라 이제는 그 내용을 전부 다 외우고 있단다.
“나이가 들다 보니 소설책이나 과학책을 읽는 다는 것이 어렵다라고. 그냥 마음이 편해지는 책을 찾아 많이 읽어.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책은 천수경이야. 대부분의 책들은 읽고 나면 내용이 많이 잊혀지는데 천수경은 외우고 있어. 책이란 게 그런 같아. 정말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의 내용은 절대 잊혀 지지 않아”
젊은 사람들과 곁에서 독서하였으면
한 달에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독서량. 독서보다는 인터넷과 텔레비전에 더욱 익숙한 젊은 사람들의 책 읽는 모습을 쉽게 찾지 못해 아쉽다는 김윤중 할머니는 자신이 젊었을 때 독서를 할 기회가 없는데 반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원하는 책의 대부분은 자유롭게 볼 수 있다며 좋은 시기를 보람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요즘은 책 읽기에 얼마나 좋아. 공부도 많이 해서 영어로 된 책도 다 읽을 수 있잖아. 한글을 몰라 책을 못 읽는 사람도 거의 없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은 큰 도움이 될 거야. 나이를 먹은 나 역시도 독서를 통해 얻는 것이 너무 많아. 젊은 사람들이 책을 더 가까이 했음 해”
오랜만에 만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과거 전쟁 때의 이야기나 어린 시절 동네 이야기를 아무리 재미있게 해줘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며 독서를 통해 얻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손자 소녀들에게 전해주고 싶단다.
“이제 손자 손녀들도 결혼을 했어. 그렇다 보니 옛날이야기에는 재미를 못 느껴. 그런다고 젊은 사람들의 문화를 내가 이해하고 따라 하는 것은 어렵고. 하지만 독서란 건 시공을 초월하는 것 같아.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손자 소녀들이 느끼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이제는 그런 공감대로 손자 손녀들과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임영조 기자 lim5180j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