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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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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요? 28년간 동거 동락한 직장 동료죠”

시어머니 주락소(90세)씨와 며느리 이영순(58세)씨

기사입력 2009-08-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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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하얗게 센 머리털을 휘날리며 이곳저곳 미용실을 활보하는 할 할머니는 점심시간이 되자 식사를 하겠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손님 머리를 손질하던 중년의 한 여성을 백발의 할머니가 남기고간 나머지 일을 마치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 시어머니 주락소 할머니와 며느리 이영순씨의 28년 직장동료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내리쬐는 햇볕을 등지고 들어간 미용실에는 서너 명 정도의 이웃들이 모여 시끌하다.


올해 90세가 된 주락소 할머니는 한 곳에서 손님 머리를 손질하며 들릴 듯 말 듯 한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세기에 불과 10년이 모자라는 나이에 손님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눈으로 보면서도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10여분의 머리 손질이 끝이 난 주락소 할머니는 다시 이웃들과 여유로운 일상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28년간 직장에서 함께 한 세월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손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며느리 이영순씨.


며느리 이영숙씨와 시어머니 주락소씨는 아침 9시가 되면 미용실로 출근을 한다.


어렵다면 어느 관계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인 이들이지만 그들의 직장인 미용실에 들어오면 정확히 구분되는 그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이영숙씨와 주락소 할머니가 함께 며느리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36년 전 외동아들과 결혼해 어려운 집안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미용사 일을 하는 며느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다.


“18살에 천안에서 안성으로 시집온 뒤 26살에 첫 아이를 출산하고 다음해 남편을 잃고 아들과 살았지. 외롭고 힘들게 살다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당시 집안 형편이 안 좋았거든. 며느리였지만 딸과 같은 사람이었지. 그런 사람이 돈을 벌겠다고 미용사 일을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뭐라도 돕고 싶어서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지”


28년 전 그렇게 시작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본격적인 사회적 동침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굳건해 졌다고 한다.


28년 당시만 하더라도 환갑을 갓 넘긴 시어머니는 미용실을 찾아 이곳저곳 청소를 하는 것에 머물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미용보조사로서의 역할을 당당히 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저 어머님이 도와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러웠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죠. 근데 어머님께서 일 하시는 것이 너무 꼼꼼하셔 제가 하는 일에 너무 많은 도움을 주시죠. 이제는 나이도 있으시고 해서 그만 하셨음 어머님은 여기 나오시는 것이 좋으신가 봐요”


건강도 찾고, 가족 간의 사랑도 찾고

 

90세의 주락소할머니가 66세의 손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28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하루를 함께 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런 그들에게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어머님도 저도 구구절절 많은 사연들이 있어요. 함께 겪은 사연들도 있고 또 따로 겪은 사연들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마음들을 우리가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서로 의지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하나가 된 것 아닌가 생각해요. 어머님과 함께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강해졌다는 것이죠”


며느리의 이런 마음에 주락소 할머니는 90세의 나이에도 팔 다리 어디 한곳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는 듯 늘 건강한 모습으로 며느리와 함께 하고 싶단다.


“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내 나이에 비해 정말 건강하지. 며느리에게 고마워.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있었다면 아마 죽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미용실을 찾아오는 것을 늘 반갑게 반겨주고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피해만 주는데도 늘 고맙게 여기니 마음 편하게 운동 삼아 직장 일을 하고 있는 거야”


10년간 요금인상 없으니 손님들 방끗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알콩 달콩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에는 늘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웃들로 시끌 하다.


금산동에서 28년간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터줏대감이니 이웃들의 방문이 많은 것도 당연하지만 단골손님들도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찾아온단다.


할머니의 서비스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지만 지난 1997년 IMF시절 이후 미용료를 한 번도 인상하지 않다 보니 손님들은 질 좋은 서비스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손님들이 한 번씩 물어요. 왜 다른 곳은 만원씩 받는데 여기는 절반밖에 받지 안냐고요? 실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손님도 있죠. 3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다 보니 단골손님이 많아요. 그분들에게 가격이 올랐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욕심이 없는가 봐요. 그냥 오천 원만 받아도 충분하던 걸요”


이런 며느리의 마음에 시어머니는 한마디를 더 거들며 며느리 자랑에 여념이 없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까지 점심식사를 준다며 그런 며느리의 마음이 예뻐 함께 일하는 순간은 늘 행복하다는 것이다.


“예전엔 안법고등학교 근처에서 미용실을 했는데 저녁시간에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럼 저녁 먹을 시간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빵을 사둬. 먹으라고. 그런 며느리가 참 고맙고 예뻤지. 항상 그런 마음으로 손님을 대하니 내도 나이를 잊고 열심히 일을 할 수 밖에 더 있어”


정정한 시어머니, 착한 며느리 서로 감사

 

쉬는 틈을 타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 주락소 할머니.

9시경에 미용실을 찾은 주락소 할머니는 저녁 5시가 되면 집으로 향한다.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한 며느리를 미용실에 남겨둔 채 내일 다시 찾아 오겠노란 말을 남기고.


더운 여름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던 이웃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자리에 앉아 지친 다리 잠시 쉬던 이영숙씨는 정정하게 지금껏 곁에 있어준 시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저를 늘 챙겨주시고 미안 해 하시죠. 그냥 집에 계시는 것이 편할 듯 한데 꼭 그렇지는 않으신지 미용실로 나오셔 미약한 일이지만 뭔가 계속 도움을 주려는 모습도 감사하지만 그것보다는 정정하게 생활 하시는 것이 정말 고맙죠”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집으로 향하던 주락소 할머니.


남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며느리의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에 만족하는 삶보다는 며느리의 지친 삶에 작은 바람이라도 되고 싶다는 듯 그렇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임영조 기자 lim5180jo@hanmail.net


자치안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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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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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 상하이거사
    2009- 08- 29 삭제

    동거동락(同居同樂) 같이 살면서 즐거움을 같이 함. 동고동락(同苦同樂)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함. 제목으로 뽑으신 동거동락,,,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제로 써야 하는 성어는 동고동락이 맞는 것 같은데요?

  • 희망돌이
    2009- 08- 28 삭제

    할머니 오래 사세요. 며느님도요. 행복하고 건강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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