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한여름이다. 움직임 없이 앉아만 있어도 선풍기 바람 없이는 땀이 줄줄줄 흐른다. 여름이면 으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귀신 이야기가 자연스레 회자된다.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를 찾은 손자 손녀들은 등골이 오싹한 외할머니의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 모깃불에서 피어나는 연기에서 귀신을 연상시키며 더위를 잊는다. 금산동의 노홍례 할머니에게 귀신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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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홍례(좌측) 할머니의 귀신이야기에 재미없는 예산이야기라고 말하는 양연형 할머니. |
“여우의 울음소리가 먼발치서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갑작스레 눈앞에 흰색의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정신을 잃어버린 나그네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 눈을 떠보지만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
숨을 죽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손자 손녀들에게 큰소리로 ‘어!’라고 한번 외치자 금세 조용하던 마당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과 나누던 옛날 귀신 이야기들
올해로 팔순을 넘긴 나홍례 할머니와 양연형 할머니는 어릴 적 누군가에게 들었음직한 흔하디흔한 귀신 이야기에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자소녀들에게 다시금 이야기한 기억이 가물가물 하단다.
더운 여름 귀신 이야기라도 듣고 싶어 찾아 왔다는 기자의 말에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이 있냐고 선뜻 답을 한다.
그게 아니라 오래전 손자 손녀들에게 신명나게 해주었던 귀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니 그제야 기억나는 게 없다니.
취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옛날이야기, 기억 안나. 손자 손녀들이 방학 때 찾아오면 이야기를 해주었겠지.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 없어. 그냥 그때 할머니 이야기를 듣던 애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까지 있어. 벌써 30년이 넘었어.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 안 해준지도”
그래도 어쩌나? 여름인데 귀신 이야기라도 한번 해달라고 하니 억척스럽게 거부의사를 밝히다 있다가 ‘이내 못이기는 척 하시며 해줄까’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요즘은 여름이라고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섭다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귀신 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해 더 조심하며 살아가면 더운 여름도 금세 잊혀 질 것이라고 말을 이어 간다.
“80 평생을 살면서 사람 외에 귀신이란 것을 본적도 없고 믿지도 않아. 손자 손녀들에게는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해주면 엉엉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재밌어 지어 내기도 했지만 요즘 세상은 귀신이 하는 짓보다 무서운 일이 너무 많아. 착하고 선하게 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는 것이 세상이잖아. 그래도 귀신들은 안 그랬대. 힘없는 사람들은 도와주고 나쁜 일 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사람이 귀신보다 못한 세상이 되었어”
귀신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추억거리
양연형 할머니에게 있어 귀신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저 기억나지 않는 한낮 꾸며낸 이야기일까? 모깃불 피워두고 손자 손녀들에게 전해주던 귀신 이야기.
양연형 할머니는 “이제 해주고 싶어도 해줄 사람이 없는 공허한 이야기꺼리란다”
“옛날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벌써 부모가 되었어.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아마 그 이야기가 남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증손자 손녀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던 옛날이야기들이 점점 잊혀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말하는 양연형 할머니는 증손자손녀들에게 귀신이야기라도 한번 해볼 마음으로 가까이 나가면 이름도 알지 못하는 오락게임에만 집중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우리가 어릴 적에는 텔레비전이 있었나. 그 흔한 라디오가 있었나. 그냥 집에서 가족들과 각각 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지. 할머니께서 재밌는 귀신이야기라도 한번 해줄라치면 일찍 씻고 할머니 곁에 누워 긴장하고 이야기를 들었지”
지금으로 친다면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할머니의 귀신 이야기를 들었음직한 나홍례 할머니는 변해 버린 지금세월에 잊혀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없던 시절 행복을 주던 ‘귀신’ 이제는
안성이 고향인 나홍례 할머니.
금산동에서 80년을 넘게 살다보니 안성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은 웬만해서는 다 알고 있단다.
이런 저런 흉흉한 소식도 많고 슬픈 이야기도 많고 많았단다.
“귀신 이야기는 아니지만 흉흉한 이야기를 한다면 한두 개겠어. 원래 귀신 이야기란 게 슬픈 이야기에서 나오는 거잖아. 안성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았지. 하지만 사람들은 슬픈 사연은 다 잊고 무서운 부분만 기억하는 거지”
여름이라 사람들이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통해 잠시 더위를 잊으려 하는 것이 아쉬운 듯 이제는 훈훈한 이야기로 여름을 견뎌 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정말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에는 당장에 나눠 먹을 음식도 모자랐잖아. 그럴 때 귀신 이야기는 소박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지. 더운 여름철에 그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행복을 주는지 몰라. 하지만 요즘 세상은 귀신 이야기 말고도 행복을 주는 것이 많잖아. 훈훈한 사람들 이야기로 더위를 이겨 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안성의 귀신 이야기 하나 그리고 ‘웃음’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갑작스레 빗방울이 굵어진다 싶더니 주위가 어두워진다.
순간 모든 감정들이 ‘귀신’이라는 단어 하나에 집중되는 것을 느낀다. 그때 나홍례 할머니는 앞서 해주고 싶었던 귀신 이야기를 하겠노라며 이야기를 꺼낸다.
<주의, 무서우니 읽는 독자분들께서는 밝은 불빛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안성산 포도를 함께 먹으 시며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환갑을 넘긴 사람들은 아마 많이 알거야. 지금 안성 시내의 많은 부분이 공동 묘지였다는 사실을. 어느 학교가 예전에는 공동묘지였어. 지금에야 길도 넓어지고 차도 많이 다녀 무서운 것을 모르지만 그땐 사람들이 무서워서 빙빙 돌아 다녔지. 귀신? 그런 것 한 번도 못 봤어. 사람 마음이란 게 하도 약해서 겁을 먹으면 다 그렇게 보이는 거지. 세상 괜히 무서움 가지고 살면 안 될 것 같아. 귀신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끝이 나야 하는 거야”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여름철 오싹할 만큼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잘 해주었던 할머니는 이제 그 내용조차 기억을 못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보다 삶을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말해주는 목소리도 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듯하다.
임영조 기자 lim5180j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