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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5-08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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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明倫)... 교육을 통해 인간사회 윤리를 밝힌다는 뜻을 품은 마을

다시 찾은 우리동네 우리마을[348] : 안성시 명륜동 ③

기사입력 2017-05-0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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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지방자치시대라고 한다. 지방자치시대는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지역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본지는 안성의 각 마을과 주민들의 바람을 정확히 알고, 주민들이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마을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안성의 마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을 탐방을 연재한다. 이번호에는 명륜동 세번째 기사를 싣는다.


안성향교 대성전 내부, 정면 가운데가 공자상.

교동이 명륜동으로 바뀐 과정

1871년 발행한 안성군읍지에는 동리면(東理面)에 속해 있는 마을 이름 중 교촌리(校村里)가 등장한다.

1899년 발행한 안성군읍지에는 읍내면에 속해 있는 마을 이름 중 동리, 서리와 함께 교동(校洞)이 등장한다.

그런데 조선지지자료에 보면 다시 동리면에 속해 있는 마을 이름 중 한자로 교동(校洞)으로 표기하고 한글로 생교골로 표기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교동이라는 마을이름은 행정구역 명칭에서 사라지고 안성군 읍내면 동리(東里)에 포함된다.

그랬다가 1943년 안성의 읍내 행정구역 지명에도 일본식의 정()제도가 도입되는데 그 때 동리는 9개의 정()으로 세분화 된다.

이 때 교동의 명칭이 명륜정으로 바뀐 것으로 분석된다. 이 명칭은 1947년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 정()을 다시 동()이나 리()로 바꾸어 명륜정이 명륜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명륜동이라는 이름이 많은데 그 유래가 안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의 명칭변경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명륜동은 교촌”, “”생교골“, ”교동“, ”생겨꼴“, ”향교골등으로 불리웠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이름 자체가 쉽게 명륜동의 유래를 알게 해 준다.

즉 안성향교(安城鄕校)가 있음으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안성군지(1990) 등에 나와 있는 유래도 다르지 않다.

명륜동에 쓰인 명륜이라는 명칭은 향교의 중심 건물 중 하나인 명륜당”(明倫堂)에서 가져온 것이다.

명륜(明倫)’이란 교육을 통해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가볍지 않은 뜻이고 향교가 어떤 곳인지 느낄 수 있다.

안성향교 대성전 내부에 진설된 석전 제례 음식.

안성향교의 설립시기

안성향교의 설립시기에 대해서는 2006년 편찬된 안성향교지(안성향교지)와 안성시지(2011)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다.

안성향교가 만들어진 것은 13985월 이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 근거는 권근이 지은 양촌집(陽村集)”극적루기(克敵樓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록에 향학(鄕學)의 장() 정한(鄭翰)을 서울에 보내어라는 구절이 보인다. (권근의 극적루기에 대해서는 극적루를 다루면서 자세히 소개할 계획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향학의 장즉 학장(學長)은 호수(戶數)500호 미만인 군현(郡縣)에 설치된 향교의 책임자를 말한다.

극적루기가 쓰여진 것이 13985월이므로 이 때 이미 안성에 향교가 있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도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 1(1401) 718일 날짜 기록에 안성의 학장(學長) 윤조(?)” 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안성향교의 설립시기는 안성군지(1990) 등에 조선 중종 27(1532)이전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안성시 안내판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안성향교지와 안성시지를 통해 13985월 이전에 설립된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안내판 등에는 부적절한 안내문이 기록되어 있다.

안성시가 세운 안성향교 안내판에는 1481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해 놨다.

틀린 기록은 아니지만 좀 더 앞 선 연대에 세워진 것이 확실하다는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어 놓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016년 석전대제 후 기념촬영.

안성향교의 역할과 변천

향교는 나라에서 세운 지방의 학교이자 문묘(文廟).

즉 나라에서 세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자 공자를 제사지내는 곳이었다. 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설치된 것으로 보는데, 특히 조선이 들어서면서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 교육이라는 것이 주로 공자의 사상인 유학(儒學)을 가르치는 것이었던 만큼 공자를 제사지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안성을 비롯한 지방에서 향교는 양반들의 교육은 물론이고 지역 의견 수렴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교육의 중요성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교육이냐일 것이다.

즉 교육의 내용과 질을 둘러싸고는 예나 지금이나 의견이 여럿일 수 있고 주도권 다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543(중종 38)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이 세워지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사립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書院)이 생겨나게 되면서 향교의 역할과 위상은 약화된다.

옛 안성군에서도 1682년 도기서원(道基書院)1692(숙종 18)에 백봉서원(白峯書院, 혹은 남파서원이라고도 한다)이 잇따라 설립되면서 안성향교는 지역 교육과 여론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기록은 거의 남아 있거나 연구된 것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안성시지(2011)는 현재 안성향교에서 보관하고 있는 성리대전(性理大全)”자치통감(資治通鑑)”등의 서적에 도기서원본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는 점을 들어 조선후기에 도기서원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안성향교의 주도권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석전대제가 진행되고 있는 안성향교 대성전 일원.

교육기능은 명륜여자중학교를 통해 계승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면서 향교 역시 크게 위축되어 교육기능은 폐지되고 공자를 제사하는 기능만 허용되었다.

그렇지만 향교의 교육기능은 안성에서는 면면히 계승되어 오고 있는데 바로 명륜여자 중학교를 통해서다.

명륜여자중학교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향교의 정신을 계승해 만들어진 학교다.

명륜50년사”(1996)에 의하면 해방이후 안성향교 유도회는 정규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청소년 등을 위해 문맹퇴치교육의 일환으로 1946925일 명륜공민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이후 19498월 명륜고등공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학생들을 교육하다가 19532월 명륜중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명륜중학교 설립을 위해 설립자이며 안성향교 전교를 역임한 정동수 선생이 개인토지를 기증하고, 안성향교에서도 토지를 기부해 학교법인을 만들었다.

명륜중학교는 19724월 안성관내 여자중학교 부족으로 인해 명륜여자중학교로 바뀌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도 안성향교에서는 석전대제 행사 때 명륜여자중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16년 석전대제가 끝난 후 명륜여중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안성향교에서 제사지내는 성현은 39

향교에서는 공자와 함께 뛰어난 유학자들을 함께 제사지냈고 지금도 공자탄생일(음력 827)에 제사지내고 있다. 안성향교에서 제사지내는 인물들, 즉 배향인물은 중국의 유학자 21명과 한국의 유학자 18명이다.

중국 유학자는 공자와 사성(四聖, 공자의 제자 중 성인으로 추앙받는 네 사람, 즉 안자, 증자, 자사, 맹자),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의 뛰어난 제자 10, 민손, 염경, 염옹, 재여, 단목사, 염구, 중유, 언언, 복상, 전손사), 송조육현(宋朝六賢, 중국 송나라시대 여섯사람의 유학자,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등이다.

한국의 유학자는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모두 18명이다.

지금 들으면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 이름조차도 낯설다.

그렇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적어도 안성의 학자(學者)들 사이에서는 마땅히 존경하고 배워야 할 사람들로 공인되었던 인물들이다.

지금도 이들 18명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종 종 만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명륜여자중학교 전경.

봉원학 기자 bwh5722@naver.com

 

자치안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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